육임유의점 적시

제목'육임약' 강해 10 '귀인 낮밤 적용 지지의 이설과 그 잘못의 지적 및 통일'의 문제2018-07-22 16: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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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七. 십이 천장(十二天將)


십이 천장은 천반 지지에 분포한다.
천을귀인을 위주로 전(前) 5위지는 1.등사 2.주작 3.육합 4.구진 5.청룡 이고, 후(後) 5위지는 1.천후 2.태음 3.현무 4.태상 5.백호이며, 귀인 상대를 천공으로 하여 합계12수 이다.
현재 편리하게 보는데는 이 귀인을 첫 머리로 하여 배열 순서대로 열거하면 된다. 
다음과 같다.

1. 귀인 2. 등사 3. 주작 4. 육합 5. 구진 6. 청룡 7. 천공 8. 백호 9. 태상 10. 현무 11. 태음 12. 천후 이다.

귀인은 축토에 속한다.
등사는 사화에 속한다.
주작은 오화에 속한다.
육합은 묘목에 속한다.
구진은 진토에 속한다.
청룡은 인목에 속한다.
천공은 술토에 속한다.
백호는 신금에 속한다.
태상은 미토에 속한다.
현무는 해수에 속한다.
태음은 유금에 속한다.
천후는 자수에 속한다.

 

효사 註 :

새삼스럽거니와 어느 선생이 위 천장 전후 설명을 오해하여 낮시간은 귀인으로 부터 배열하고 밤시간은 천후로 부터 거꾸로 배열한다고 터무니없이 가르쳐 매우 곤혹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배우는 학도도 육임을 모르고 가르치는 선생도 육임에 서툰 상황에서 벌어진 현상이었을 것인데 내가 그만 가짜가 되어버려 무참했었다.

천장은 무조건 귀인으로 부터 시작하고 위 순서대로 진행한다. 다만 지반 진술지지 궁을 분기점으로 하여 다음 항에서 정해진 정단일의 낮, 또는 밤 귀인 지지를 천반에서 찾아 그 귀인이 지반 해궁에서 지반 진궁(이 부분이 지금껏 사 궁으로 오기되어 있어 2015.8.24. 바로잡는다. 오해없기 바란다) 까지 사이의 천반지지로 나타나 있으면 좌선 우포(왼쪽에서 오른 쪽) 순행으로 배열시키고 지반 사궁에서 지반 술궁 사이에 귀인 천반지지가 나타나면 그 귀인 천반지지에 귀인을 붙여 우선 좌포(오른 쪽에서 왼쪽)로 역행 배열하는 것이다.

이점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단 정리가 되어 있다. 잠시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묘유 시는 양각을 쓴다'이다.

겨울 묘시는 캄캄한 밤이다. 여름 유시는 광명천지다. 낮으로 볼 수 없고 밤으로 볼 수 없는 묘유시는 그래서 겨울 묘시는 밤으로, 여름 유시는 낮으로 치는 것이 옳다.

육임은 태양 위주이다. 캄캄한 밤이 어찌 낮이며 광명 천지가 어찌 밤이겠는가? 육임이 태양으로 월장을 삼아 우주삼라만상에 기운을 주어 생극과 왕상휴수사로 대계를 삼았을진대 마땅히 계절 입하일과 입동일에 따라 묘유를 양각으로 쓸 일이다.

 


원문

十八. 귀인기법(貴人起法)


귀인은 일간에 따라 변하고 이동하는 것도 다르다. 기타 각 천장도 이처럼 변환된다.
이 귀인 기열에 대해 전해오는 법칙이 있는데 그 가결은 다음과 같다.

갑무경 우양 (축미)
을기 서후향 (자신)
병정 저계위 (해유)
임계 토사장 (묘사)
육신봉 호마 (인오)
차시귀인방

이를 다시 자세히 설명하건대

갑일 무일 경일을 만나면 귀인은 축에 있거나 또는 미에 있게 된다.
을일 기일을 만나면 귀인은 자에 있거나 또는 신에 있게 된다.
병일 정일을 만나면 귀인은 해에 있거나 또는 유에 있게 된다.
임일 계일을 만나면 귀인은 묘에 있거나 또는 사에 있게 된다.
신일을 만나면 귀인은 인에 있거나 또는 오에 있게 되는 것이다.

육임과식에 있어 귀인은 음귀가 있고 양귀가 있다. 또 이름하여 일귀(日貴) 야귀(夜貴)라고도 하고 단귀(旦貴) 석귀(夕貴)로도 나눈다.

낮에 묻는 것을 판단할 때는 양귀를 쓰고 밤에 묻는 것을 판단할 때는 음귀를 쓴다. 즉 묘진사오미신 여섯 시간에 의해 과식을 일으킬 때는 양귀를 쓰고, 유술해자축인 여섯 시간에 의해 과식을 일으킬 때는 음귀를 쓴다는 것이 위 가결인 것으로서 먼저 글자는 양귀, 나중 글자는 음귀인데, 즉 갑무'겸' 양귀는 축, 음귀는 미인 것이다. 이같이 유추하라.

엽회정(청대 사람)이 논해 놓은 귀인기열이 세속에 전해지는데 그것을 실재로 보면 '갑무경 우양, 을기 서후향, 병정 저계위, 임계 토사장, 경신 봉호마, 영정귀인방'으로 되어 있다.

이 원문을 살펴 두드려 보자면 갑목 무토는 을목 기토와 상칭인데 엉뚱하게 경금이 들어가 있다. 기이하기도 하고 특별하다. 병정 화와 임계 수는 나누어질 수 없다. 경신 또한 예외적이어서 다시 보자면 이는 무리한 것으로 보겠다. 그래서 엽씨가 이를 개정한 것으로 보이고 경자를 '겸'자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이것은 오류이거나 교정의 잘못이거나 할텐데 학습자가 채택해 쓰기 나름이겠다. 다만 본서 이후 엽씨설을 따르는 사례가 많다.

이것 외 다른 법이 더 있다.
정순조(청 가경조 시대 사람)의 '육임심원' 중 음양귀를 나눈 두 결이 있어 여기에 붙이니 다음을 자료로 참고하기 바란다.

일(日) 귀인 가(歌)

갑양 무경 우
을후 기서 구
병계 정저 위
임토 계사 유
육신 봉호 상
양귀일중주

야(夜) 귀인 가(歌)

갑우 무경 양
을서 기후 향
병저 정계 상
임사 계토 장
육신 봉오 마
음귀야시당

 

효사 註:

매우 중요한 육임 법칙의 부분이다.
저자는 엽회정의 논을 따르면서 경금이 왜 엉뚱하게 갑무에 끼어들었는가? 그래서 신 일간이 홀로인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오류이거나 교정이 잘못된 것이 오래동안 이어져 오다보니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결론 부터 말하겠다.
저자가 따르는 엽회정이 틀리고, 다만 참고하라는 정순조의 가결이 옳다.
왜그런가?

청대에 최종 정리된 자부 술수류에 '육임대전', 그리고 황제의 명으로 '협기변방서'가 쓰여졌는데 이 협기변방서는 육임대전의 보완서이다. 여기에 보면 '귀인기열법'이 등재되어 있다.

그 '귀인기열법'을 최종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제를 해 놓고 있다.

"선천의 덕은 자에서 기하고 후천의 덕은 신에서 기하며 오간의 덕이 신과 합하고 귀를 취함으로서 육임을 배우는 선비가 그 근원을 연구하지 않음을 계승한다. 성조인 황제께서 정하신 '성력고원' 1서는 기형, 권도와 표준을 꿰뚫어서 기록하는 관리가 표준을 흔들어 낮점의 축과 밤점의 미를 바로잡음으로서 실로 천고의 표준을 세우기에 족하다. 황제께서 편찬하신 '협기변방서'에 이 뜻을 다시 펼치시고 삼가 생각컨대 '오월춘추'의 자서의 점에 실려있는바 "삼월 갑술시 계명은 청룡이 유에 있으니 갑일은 축이 음귀이다", 범려의 석실 점에서 십이월 무인시에 일출을 가하니 또한 청룡이 유에 임하고 공조가 등사가 되는 것은 무일에 축이 양귀가 된다". 고의를 연역해서 거슬러 가다보면 성인이 교시하는 것은 선후가 다 같다. 이 책의 천을귀인 취하는 것도 일반 예를 따랐다. 권 중에 선천 귀인 하나(효사 註: 갑무경 낮 축, 밤 미, / 병정 낮밤 해, / 을기 신, / 임계 낮밤 사, = 즉 이 귀인법에서는 子,午,卯,酉가 빠지는데 이는 기궁법과 같다) 만을 게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고 누락되어 실전(失典)하였기 때문이다".

청대에서 이렇게 최종 집대 정리된 '귀인기열법'을 적시한다.


선천 곤 순열/ 일별 천간 합/ 선천 곤 역열


낮 귀인 //기 갑//   밤 귀인

낮 귀인 //경 을//   밤 귀인

낮 귀인 //신 병//   밤 귀인

낮 귀인 //임 정//   밤 귀인    
귀 입옥 /           / 귀 입옥 *귀인 순행 한계 궁위

낮 귀인 //계 무  // 밤 귀인

낮 본궁 ,자 충지//  밤 본궁 
낮 귀인 //갑 기//   밤 귀인

낮 귀인 //을 경//   밤 귀인

낮 귀인 //병 신//  해 밤 귀인

귀 입옥 戌 /          / 귀 입옥 *귀인 역행 한계 궁위

낮 귀인 해//정 임//  유 밤 귀인  

이렇다.

위를 보자면 천간 합을 통해 순열은 낮귀인 자로 부터 순행으로 이어지고 역열은 밤귀인 신으로 부터 역행 배열되고 있다. 육임 여러 법칙, 순역법과 일치한다.

이러한 법칙에 의해 귀인은 갑 낮 미, 밤 축, 무경 낮 축, 밤 미, 병 낮 유, 밤 해, 정 낮 해, 밤 유, 기 낮 자, 밤 신, 임 낮 묘, 밤 사, 계 낮 사, 밤 묘 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법칙을 몰랐던 것이어서 왜 경금이 갑 무에 끼어들었는지, 신금이 왜 홀로인지, 그래서 갑 무 다음에 '겸'자는 경이 아니고 신에 가야하는 것을 후학들이 그만 '갑무경'으로 묶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갑 낮귀가 왜 유독 미가 되는지, 위 '귀인기열법'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다면, 또 이 같은 일간별 천간합에 의한 지지(곤) 순역 논리에 어두웠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귀인법은 '귀인기열법'에 의해 위와 같이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이같은 법칙을 모르는 현재의 선생도 더러 있어 구법을 갖고 가르치다 보니 자꾸 이설이 횡행했던 것이다.

또 하나 더 있다.
육임하는 여러분은 '신장살몰일시'를 잘 알 것이다.
이 '신장살몰일시'는 천문 亥 월장과 지호 巳 월장을 경계로 수법 길일, 길시가 甲일과 戊, 庚일로 달라진다. 이때 만약 갑의 낮귀까지 丑이 되어 무, 경일의 귀인과 같다면 갑일과 무, 경일을 굳이 巳 따로, 亥 따로 각 6개월씩 나눠 달리 쓸 필요가 없다. 12월장 기간 내내 모두 갑, 무, 경일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엄연한 법칙들을 놔두고, 혹은 모르면서, 중국에서조차 사라진 고법을 운운했다는 것, 가관이었다.

수년 전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육임을 인도할 때 대학원생들에게 이 사고전서 '자부 술수류'CD와 '육임대전'을 나누어 주고 일부 강의했었다. 매우 귀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 후 유고를 당해 대학원을 그만 둔 뒤 다른 과목 교수에 의해 이 법이 엽씨 것으로 바뀌어 대학원생들까지 이법에 대한 혼동이 야기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물론 '효사육임강론'에 이를 적시했거니와 아직 모르는 학도를 위해 이 강해를 통해 알리게 되어 기쁘다.

원전에도 이처럼 오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말해 두겠다.


-계속-



이 '귀인기열법'을 말하자니 만감이 스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오늘은 '스승의 날'로, 내가 작심하고 어느 한 '작업'이 끝난 날이기도 하다.

'뜻은 말을 따르지 못하고 말은 책을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책이나 논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근, 현대 중국, 일본, 한국의 유명한 오행가들은 모두 육임을 했다. 유백온, 원수산, 위천리, 서낙오, 아베, 토정 등 제 씨들이 사주만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써놓은 육임서들에는 유백온을 빼고 모두 위 '귀인기열법칙'이 적용되어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이 고법이 왜 갑자기 이 나라에서 유령으로 나타나게 되었을까?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가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그때, 대학원에서 육임학을 가르치던 나는 유고 사정을 당했고, 나 대신 육임학 논문지도를 맡았던 타학(他學) 지도교수들 일부의 나에 대한 적대감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지금에 이르러 당연히 할 말이기도 하다.


나는 당시 육임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육임 알리는데 미쳐있었다. 그리고 때에 이르러 대학원 교수가 되었고 이 후 대학원생들이 내 강의, 즉 육임에 쏠린 것이었을 뿐 내가 그들로 부터 미움받을 다른 사적 이유는 없었다. 또 그들은 육임을 몰랐고 알았다해도 육임에 녹아있지 않은 교수들이었다. 이것을 소위 '문외한'이라 한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육임은 주역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그 지도교수들의 교수회의 공식 결론이다. 육임 '구종법'인 과체 및 용격은 주역괘상의 발전이다. 이 점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당시 그들의 육임에 대한 무지를 비웃는 것이다. 이것 부터가 그 지경인데 다른 것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육임논문 등에서 내 이름이 빠지고 아래에 적시해놓은 '귀인기열법칙'이 도외된 것에 대한 사정이 또한 이 같은 경로였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우리나라에 '육임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나에 의해 육임이 널리 알려지고 이 만큼 성장했다는 것, 다 알 것이고 이 바람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 14년간 서울 '효사숙'을 비롯해 전국 시,도 마다에 설치했던 학당을 매일 순회하며 가르쳤다. 2005년도에 대학원 교수로 가느라 지방 학당은 중단했으나 서울 '효사숙'에서는 계속했다. 내가 지방 순회를 못하게되자 지방에서 '효사숙'으로 많이들 와서 공부했다. 이때 나와 공부한 선생들이 이 나라에서 지금 "내노라"하는 육임가들이다. 초창기에는 육임을 쉽게 접근시키기 위해 '시보', '래정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더러 혼자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 중국가서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나는 안다. 그들 역시 기초부터 내가 가르쳤기 때문이다. 내 책 베껴 자기가 쓴 책으로 팔다가 들켜 찾아와서 빌었던 자들도 많다. 우리나라 육임사에서 나의 족적이란 이렇듯 빼고싶어도 뺄 수없는 입지가 분명하다. 그런데 뺐다. 교수도 빼고 학생도 뺐다. 학문적 근거가 아니라 그냥 미워서였고 그 미움에 따르느라 뺐다.

이 일은 결국 학문적 양심, 역사관의 결여, 문헌고찰 외면을 드러낸 소치로 나타나고 말았다. 나야, 내가 해놓은 것들, 어디 가겠는가? 가르쳐 온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국립중앙도서관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요, 내 책이 그곳에 다수로 보관돼 있는 기록을 누구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학자는 기록에 밝아야 한다. 그 기록을 외곡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학도의 정신에 깃든 육임학의 줄기 및 역사성이 그만 외곡되어버린 셈이다. 의도된 노림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육임강론'에 발췌해 놓았거니와 만약 위천리, 원수산, 서낙오, 아베, 토정, 그리고 내가 옳다고 여기고 적용한 이 '귀인기열법칙'이 틀렸다면 바로 전 시대의 이들 유명 오행가들을 차치하고라도 이 나라에서 내가 그동안 전국을 대상으로 비싼 값에 10여년 넘게 팔았고 아직도 팔고있는 모든 '육임활용서'와 '육임CD프로그램'들은 당장 반품되었어야 옳다. 그러나 아직 반품 받은 것 하나 없이 계속 팔리고 있다. 정확하기로 입소문까지 나있다. 

나는 이것들을 꾸준히 진화시켰고 전국 인사들이 계속 7번째
(2015년 5월에 8번째 마지막 업데이트 함= 대학교 일로 이제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못하겠다) 교환해 쓰고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것이 '설'과 '법칙'만 써놓은 학습서가 아닌 정면승부가 매일 매시간 단위로 전국 각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임상용'이라는데 이르고보면 나에 대한 그 의도된 작위적 모함의 '말'과 '뜻'은 이제 그만 멈춰져야만 한다는 것, 나 뿐 아닌 일반적 상식에 해당할 것이다. '맞고 틀리고'에 대해 이러한 다수의 '현장성'과 10여 년의 '임상 기간' 외 다른 무엇으로 증명될 것인가? 말 내밷기는 쉽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치열성이 내재되어 있는가? 이어 강조하거니와 검증하기로들면 단언컨대 수 천년 육임사에 나처럼 정면승부를 걸고 책 많이 써낸 육임가는 눈씻고 봐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를 이렇듯 부정시킴으로서 그들이 얻은 것은 뭘까? 나는 그로부터 수 년이 흐른 작년, 그러니까 2012년에, 그들을 그 학교에서 뿔뿔히 흩어지게 만들어버린 사실이 있다. 나는 그 학교 자체를 변모시켜 버렸다. 의리나 예의나 신의란 찾아볼 수 없었거니와 학문마져 손가리고 아웅하는 자들이라는 판단에서다. 역시 총장의 하수인으로 여러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을 피곤하게 하던 자들이 나의 단호한 조치에 의해 학교와 총장이 불리해지자 그들은 돌변해 총장을 물어뜯었다. 그들의 뒤틀린 인격은 이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결국 자기 갈 곳들을 허둥지둥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줄 안다.


나는 정면으로, 정정당당하게, 나쁜 것을 나쁘다고 했고, 공개적으로 학교와 총장을 꾸짖었다. 반면 그들은 뒤에서 총장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을 서슴치 않았다. 


총장은 그 학교에서 물러나기 전 나를 굳이 식사에 초대해서 바로 이 점을 언급했고 나와 그들의 '차이'라고 했다. 


나는 그 학교와 그들에게 도움을 줬던 사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한 학기가 지나자 학문 외적 문제, 어디까지나 그들의 개인 사정, 즉 수강신청자가 없어
(한 학기가 지나자 육임으로 모두 쏠려버리는 현상)
 폐강위기에 몰린다든가 하는, 자기들의 이해타산 때문에 육임을 두려워 했고 핍박했다.
지금 생각하면 수강신청의 균형을 깨트린 내 사려부족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 내 잘못이 아니다. 열심히 가르쳤고 대학원생들이 육임을 선택했을 뿐이다. 나는 일부 교수들이 집요하고도 교묘하게 매 학기 커리큘럼에서 육임을 없애려는 수작들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이겨냈다. 그리고 육임을 유지시켰다. 육임을 쥔 내가 그들의 졸이 될 수는 없었다. 대학원생들도 육임 아닌 다른 것에는 애착을 갖지 못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육임은 '졸'이 아니다" 라는 말을 여러번, 여러 경우에 말해오고 있다.

그 말대로 이미 나는 내가 이사장이자 총장인 우리 학교에서 육임학을 가르치고 있고 학사, 석사, 박사, 교수를 배출시키고 있다. 나는 더 나아가 육임학을 세계적으로 보급시킬 수 있는 여건을 갖췄고 이 환경은 확정적이다. 1차는 우리나라에서 성취되었고 2차는 일본, 중국, 인도, 독일, 미국이 될 것이며 3차는 이태리, 프랑스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뿐아니라 우리 학교가 진출하게 될 국가(2016년 7월에 아시아 15개국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 2016년 3월, 수업불량 등 여러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시킨 자들이 야합해 학교를 해당국가기관에 음해한 관계로 3개월에 걸친 수사를 받아야 해서 이 진출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는 어디든 가능하다. 한 사람의 굳건한 소명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지금도 기도한다. 

다시 말한다. 
원수산과 위천리와 서낙오, 그리고 아베나 토정이 바보이겠는가? 나 또한 바보인가? 아베는 저 유명한 동경제대 출신 신문기자였다. 토정은 육임을 했기에
 (육임 '입수법(入手法)'을 썼다) 그 때나 지금이나 유명하다. 청대 '육임대전' 편찬에 참여한 곽재래는 바로 이 부분을 들어 "조선의 이 선생"을 거론하고 있다. 뭘 좀 알고 논문지도를 하든가 해야했다는 것이다.


특히 꼬박꼬박 등록금을 받은 학교는 학생들의 학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지도교수 한 사람 유고되었다고 학교의 방침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돈 받아먹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바뀐 교수들로부터의 저열한 의도성에 시달릴 이유는 없다.


나는 그 무참한 현상에 대해 당시 문외 지도교수들에 의해 학위를 취득해야만 하는 학생, 즉 '을'의 입장이었던 점을 이해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수산, 위천리, 서낙오, 아베, 토정 등 제 씨들이 나눴던 사제간의 질서와 동료간의 우의와 정과 낭만, 그 이상이기도 했던 학문적 치열성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


나는 오늘 이 시간에 이르러 당시 내 이름을 빼도록 종용시킨 지도교수들이 지도한 육임 논문들에 대해 모조리 조사를 마쳤다. 무려 50여 일이 걸렸다. 내가 이런 말을 여기에 할 때는 다 보고, 듣고, 기록된 것들에서 찾아진 것이 있어서다. 우선 한 가지만 들자면 내 이름을 빼도록 종용하고도 내가 수년을 사색해 정리한 내 책들에서 그대로 옮겨진 논증들에 대한 지적과 지도가 없었다는 것들이 발견되었다. 참고로 나의 이 논증들은 수 천년 육임사에서 그 어떤 선학도 밝혀놓지 못한 것들이다. 즉 일상성을 통해 육임의 과학성을 담보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미 각 자에게 정해 준 논문 제목, 전개 목차 모두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각 자 마다의 소질과 특장력을 살펴 일찌감치 육임 제법 중에서 선별해 준 것들이기도 했다. 다만 마무리를 못 해준 나의 아픔이야 왜 없겠는가? 그러나 나는  육임의 역사성을 취했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또는 교수들에게, '내 것' 아닌 것은 절대 못 쓰게 하고 그것을 지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어떤 의도성으로 대학원생들을 긴장시키는 교수가 없도록 단속한다. 더욱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그런 말들 주어모으는 짓에 논문으로서의 가치란 없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나는 대학원생이 단 100 쪽이라도 자기 것을 썼으면 학위를 줄 것이다. 그것이 정직한 것이다. 무릇 무엇이든 잘 알면 '간단해진다'는 이치, 그리고 '간단하다'는 것에는 녹아있다는 것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설프거나 모르면, 글이나 말이 '짜집기'가 되어 오히려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만다.


어디 한 번 보자.

나에 대한 허물은 천하에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은, 내가 아닌 그 사람들의 허물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정작 고민하고 있다.
내 이 고민을 이해하는 자,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계를 사랑한다. 가르친 제자들도 현재 나와의 친소를 불문하고 사랑한다. 왜냐? 내가 그들 속에 긍, 부정 어느쪽이든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자기 머리를 떼어놓고 살지 못하는 한 그렇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그대로 두고보지 못할 사안이 보일 때, 특히 나의 무고사항이 또 있게 될 때, 나는 예비된 중대 결심을 실행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눈과 뜻이 시퍼런 '육임전사'이고, 내가 육임에 있어서만큼은 먼저 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이고 술수고 간에 후학도 차차 익어 갈 것이지만 선학은 아예 녹아낸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누구 한 사람, 육임에 관련해서 눈밝히고 들여다보는 자가 있는 것 , 나쁘지는 않다. 한편 칭찬 할 사람은 기꺼히 칭찬하고 싶다.

이 내 말은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하고 더불어 육임의 발전을 위한 제시점이겠다.

그리고 50일 동안 밤새우며 육임논문 만 조사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나의 치열성은 반드시 어떤 한 획을 크게 긋기로 결심할 때 시작되었다.


우선 여기에만 쓴다. 
다른데 쓰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임을 먼저 알았던 자의 마지막 배려다.


나는 지금 내가 가르친 자들이나 사계에 준해 사는 삶이 아니다. 
나에게는 더 큰 가치가 서있다.


그럴진대 나의 옳고 바른 것에 대해 계속적인 모욕이 회자된다면 내가 더 이상 누구 입장을 감안하겠는가?

참고해야 할 것이다.



고복자 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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